인간이 만든 비행체 중 가장 빠른 탐사선인 파커 태양 탐사선(Parker Solar Probe)은 태양 중력의 도움을 받아 시속 약 70만 km(초속 약 190 km)로 우주를 질주합니다.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의 속도(초속 30만 km)와 비교하면 고작 0.06% 수준에 불과합니다.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중력의 괴물인 거대 블랙홀 바로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진짜 거대한 '항성(별)'은 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까지 가속될 수 있을까요?
2026년 유럽남방천문대(ESO)의 초대형망원경 간섭계(VLTI) 국제 연구진(GRAVITY+ 컨소시엄)이 발표한 관측에 따르면, 우리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*(Sgr A*) 바로 곁을 도는 별 'S301'은 최근접점에서 초속 약 25,000~25,600 km라는 경이로운 최고 속도를 기록했습니다. 이는 진공 속 빛의 속도(c)의 무려 약 8.3~8.5%에 달하는 속도로, 2026년 ESO 발표에서 우리은하의 알려진 별 가운데 가장 빠른 별로 소개된 기록입니다. 지구가 1년에 걸쳐 태양을 공전하는 속도(초속 29.8 km)의 850배가 넘으며,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(약 38만 4,400 km)를 단 15초 만에 주파해 버리는 속도입니다.
| 은하 중심 S-성단 주요 별 | 공전 주기 (P) | 궤도 이심률 (e) | 블랙홀 최근접 거리 (AU) | 근일점 최고 속도 (km/s 및 광속 비) |
|---|---|---|---|---|
| S2 (전통적 표준 모델) | 약 16.0 년 | 약 0.884 | 약 120 AU (명왕성 거리의 3배) | 약 7,700 km/s (광속의 약 2.6%) |
| S4714 (과거 최고 기록 후보) | 약 12.0 년 | 약 0.985 | 약 12.6 AU | 약 24,000 km/s (광속의 약 8.0%) |
| S301 (2026년 GRAVITY+ 신기록) | 약 8.7 년 | 약 0.983 (극단적 타원) | 약 12 AU (토성 궤도 수준) | 약 25,600 km/s (광속의 약 8.5%) |
| 태양계 지구 공전 속도 | 1.0 년 | 0.0167 (거의 원형) | 1.0 AU (태양 중심) | 약 29.8 km/s (광속의 0.01%) |
초속 25,600km: 15초 만에 달에 도달하는 항성의 질주
초속 25,600 km라는 숫자는 일상적인 감각으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영역입니다. 이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시속 약 9,216만 km에 달합니다.
- 지구 둘레(약 4만 km):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인 단 1.56초 만에 지구 적도를 한 바퀴 회전합니다.
- 지구-달 거리(약 38만 4,400 km): 아폴로 우주선이 사흘 밤낮을 날아갔던 거리를 단 15초 만에 통과합니다.
- 지구-태양 거리(1 AU, 약 1억 4,960만 km): 태양빛으로도 8분 20초가 걸리는 거리를 이 별은 불과 1시간 37분 만에 주파합니다.
이것은 가상의 공상과학이 아닙니다.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은하의 한복판에서 태양 질량의 수 배에 달하는 거대한 진짜 별이 이 미친 속도로 암흑의 심연을 질주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.
로켓 엔진이 아니다: 태양 430만 개가 당긴 중력의 롤러코스터
S301이라는 별에 자체적인 추진 엔진이 달린 것도 아닌데, 어떻게 광속의 8.5%라는 속도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? 답은 바로 '이심률 0.983'이라는 극단적으로 찌그러진 타원 궤도와 궁수자리 A*의 무시무시한 중력에 있습니다.
케플러 제2법칙(면적속도 일정의 법칙)에 따르면, 궤도를 도는 천체는 중심 천체에 가까워질수록 중력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맞바꾸며 속도가 급격히 빨라집니다.
- 원일점(가장 먼 곳): 블랙홀에서 수백 AU 이상 멀리 떨어져 있을 때 S301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서행합니다.
- 근일점(가장 가까운 곳): 그러나 중심부로 낙하하면서 태양 430만 배의 질량이 만드는 시공간의 깊은 중력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칩니다.
- 12 AU의 스릴: 별이 블랙홀과 가장 가까워지는 거리는 고작 12 AU(약 18억 km)입니다. 우리 태양계로 치면 목성(5.2 AU)과 토성(9.5 AU) 바로 바깥쪽 정도의 좁은 구역까지 거대 블랙홀 코앞으로 다이빙하는 것입니다.
최근접점에서 S301의 속도는 초속 약 25,000~25,600km로 추정됩니다. 별은 반발력을 받아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, 속도와 각운동량을 가진 궤도 운동을 이어갑니다. 가까워질 때 빨라지고 멀어질 때 느려지면서 약 8.7년 주기로 블랙홀을 돕니다.
빛의 간섭계: 칠레 사막에서 2만 7천 광년 너머를 꿰뚫다
지구에서 2만 7천 광년 떨어진 은하 중심부는 두꺼운 성간 먼지와 가스로 가득 차 있어 가시광선 망원경으로는 칠흑 같은 암흑만 보입니다. 더욱이 은하 중심의 별들은 빽빽하게 뭉쳐 있어 개별 별을 분리해 관측하는 것은 달 표면에 놓인 동전 하나를 식별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.
막스 플랑크 외계물리학 연구소(MPE)의 라인하르트 겐첼(Reinhard Genzel) 연구팀은 칠레 파라날 천문대의 초대형망원경 간섭계(VLTI)와 2세대 근적외선 측정 장비인 GRAVITY+를 동원했습니다. 직경 8.2m짜리 거대 망원경 4대를 광섬유로 연결해 직경 130m짜리 초대형 단일 가상 망원경과 맞먹는 공간 분해능을 구현한 것입니다.
2023년 봄 포착한 희미한 별의 위치를 여러 시기의 적외선 자료와 비교해 궤도를 추정했습니다. 연구진은 과거 자료에서도 별의 흔적을 찾아 2017년까지 위치 기록을 확장했습니다. 관측 자료에 가장 잘 맞는 모델을 구하는 과정이며, 궤도 매개변수에는 측정 불확실성이 따릅니다.
시공간을 비트는 검증: 아인슈타인의 꽃잎 궤도와 블랙홀 스핀
천문학자들이 S301의 속도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한 스피드 기록 경신 때문이 아닙니다. 이 별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우주에서 가장 극한의 조건으로 검증할 수 있는 '완벽한 천연 실험실'이기 때문입니다.
뉴턴 역학에서는 별이 영원히 닫힌 타원을 맴돌아야 하지만,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곡률 이론에 따르면 강한 중력장 속에서 궤도는 닫히지 않고 회전축 자체가 매 바퀴마다 조금씩 돌아가야 합니다. 이를 '슈바르츠실트 세차(Schwarzschild Precession)'라 부르며, 궤도가 마치 꽃잎(장미 곡선) 모양을 그리며 회전합니다.
- 기존 별 S2의 세차: 16년 주기의 S2는 한 바퀴 돌 때마다 근일점이 약 12분(0.2도) 회전하는 것이 확인되어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증명했습니다.
- S301에서 예상되는 세차: 측정한 궤도 매개변수를 상대론적 모델에 넣으면 한 바퀴당 약 2도 규모의 슈바르츠실트 세차가 예상됩니다. 이 예측과 블랙홀 회전에 의한 효과를 정밀하게 구분하려면 앞으로의 궤도 관측이 중요합니다.
더 나아가 천문학자들은 S301을 통해 현대 천체물리학의 마지막 성배인 '궁수자리 A*의 자전 스핀(Spin)'을 실측하려 하고 있습니다. 회전하는 블랙홀은 주변 시공간 자체를 믹서기처럼 함께 끌고 돌리는 '렌제-티링 효과(Lense-Thirring effect, 프레임 드래깅)'를 일으킵니다. S301처럼 블랙홀 턱밑을 광속의 8.5%로 질주하는 별만이 이 미세한 시공간 소용돌이의 흔적을 궤도 섭동으로 온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.
S301은 빠른 별이라는 기록뿐 아니라 블랙홀 가까이에서 중력을 시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. 그 속도가 별의 보편적인 한계라는 뜻은 아닙니다. 앞으로 궤도를 더 오래 추적하면 블랙홀 회전에 관한 예측을 관측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.
자료 근거
- GRAVITY+ Collaboration (2026), Discovery of a star sensitive to the spin of Sagittarius A* — Nature. S301의 발견, 궤도 추정과 블랙홀 회전 측정 가능성.
- ESO (2026), Milky Way’s fastest star orbits our supermassive black hole so closely it feels its spin — 발견 경위와 초속 약 25,000km의 속도, 향후 궤도 관측 계획.
- European Southern Observatory (ESO, 2020) — 『Detection of the Schwarzschild precession in the orbit of the star S2 around the Galactic centre massive black hole』: 일반상대성이론 슈바르츠실트 궤도 세차 및 일반상대론 실측 데이터.
- Peißker, Florian et al. (2020) 『S4714: A star on a relativistic orbit around Sgr A*』 — The Astrophysical Journal: S-성단 초고속 별들의 근일점 속도 비교 및 프레임 드래깅 효과 분석.
- Ghez, Andrea M. et al. (2008) 『Measuring Distance and Properties of the Milky Way's Central Supermassive Black Hole』 — The Astrophysical Journal: 궁수자리 A* 질량(4.3 × 10⁶ M☉) 및 은하 중심 거리 표준 물리량.